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모토 유타카/사건사고 (문단 편집) ===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 비교 관련 글 논란 === [[https://lineblog.me/yamamotoyutaka/archives/13144663.html|원 제목은 독일과 일본으로 되어있다]] ||https://cyzo.com/2017/07/post_33544_entry.html (기사 글 : 히틀러 & 나치 영화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케야키자카46마저도 삼켜버린 [[나치즘]]의 위험한 매력) 흠흠 거리면서 읽고 있었다. 뭐 대충은 그렇다 싶은 논조였는데, 하나만, 어라라? 싶었던 언급이 있었다. "점령국으로부터 빼앗은 식량이나 물자로 독일 국내는 물질적으로, 전시중에서도 굶주림에 고통받을 일은 없었습니다. 전쟁체험과 굶주림이 이어져있는 일본과의 커다란 차이이겠지요." 으음?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일본도 도중까진 이겼었다. 하지만 그걸로 일본이 풍요롭고, 국민이 사치롭게 썼다고 하는 자료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전쟁은(특히 [[태평양 전쟁]]) 주로 석유의 확보 목적이 컸단 점이 포인트다. 그래서 다른 물자에는 기본 흥미가 없었던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치는 물건들이나 고급 식재료까지 약탈했다고 한다. 일본은 왜 그걸 하지 않았던걸까? 여기에서 [[고바야시 요시노리|요시링 선생]]의 전쟁론(新・ゴーマニズム宣言SPECIAL 戦争論)에 돌아봐야겠다.[* 훗날 이를 진지하게 분석했던 유타카는 그가 언급한 선생의 코로나19 위험성 축소론과 다소 다른 방향으로 주화입마하여 저학력자한테 고학력자 비판 권리는 없다는 비하발언을 하였다.] 그의 이론을 믿는다고 하면 일본인은 너무나 의리가 있었던것이다. 정말로 [[대동아 공영권|대동아공영국]]을 지향했었던 것이다. 침공한 것도 식민지화되어서 황폐해진 후진국만 했단 점도 컸을것이다. 솔직히, 이득적인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노동력이라든가, 현지인을 노예같이 막 써먹어도 괜찮았을것이다. 하지만, 의리적인 일본은 그걸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지 근대화론|인프라를 정비해, 현지인에게 교육을 시켜, 식자율을 높여버린것이다!]] 현지를 풍요롭게 만든것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국내는 굶주리게 만들었단거지. 어리석구나, 일본은... 전쟁을 할 재능이 없어... 독일과 일본의 전쟁책임을 동일시하는 멍청이는 지금도 뿌리깊게 박혀있지만, 이러한 점을 보면 매우 다르단 걸 알겠지. 앞의 전쟁의 정당성을 고의로 주장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다른 건 다른거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 글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에 입국정지되었다고 한다.([[http://bbs.ruliweb.com/family/211/board/300015/read/2132852|#]]) 공교롭게도 2019년부터 그는 일제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문화계 대선배 도이 유타카(土居豊)를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듣보잡이라 까다가 망신거리가 되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이외의 다른 문화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영영 스스로 끊어먹었다. 2020년 중국에서 이 글이 재조명이 되었고 야마칸이 만든 작품을 보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심할 경우 앞으로는 더 이상 본명으로 감독 활동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중국에 못 파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에게 투자하는 스폰서가 어딨겠는가. 다만 애니메이션 업계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므로 가명으로 콘티를 그린다거나, 대리 감독을 내세워서 만드는 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는 있다. 실제로 야마모토 유타카는 자신의 회사 Order의 공동 필명 미마 카케루(三間カケル)로 활동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